회사이론과 이사

영미법상 이사는 수인자(fiduciary)로서 신인의무를 부담한다는 점에서 대리인(agent)이나 수탁자(trustee)와 같은 부류에 속한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이들 주체사이의 차이는 그다지 부각되지 않고 있다. 오늘은 이사라는 지위의 특징에 초점을 맞춰 회사이론을 재검토하는 이론적인 최신 논문 한편을 소개한다. Tomer S. Stein, Of Directorships: Reconfiguring the Theory of the Firm (2023) 저자는 테네시대학 로스쿨 조교수로 재직하는 회사법학자이다.

전통적 법이론과 경제이론에 따르면 이사, 대리인, 수탁자와 같은 수인자와 거래처(contractors)사이의 차이는 뚜렷하지만 수인자들은 기능면에서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본다. 저자는 이를 수인자 본질주의(fiduciary essentialism)라고 부르는데 논문은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저자는 이사제도를 채택하는 조직은 대리인이나 수탁자를 활용하는 조직과 크게 다른 성격을 보인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사제도의 특징으로 다음 두 가지를 지적한다. ①하나는 이사가 잔여채무자(residual obligor)의 지위를 지닌다는 것이다. 이는 이사가 회사재산에 관한 결정을 할 때에는 먼저 이자를 받을 권리가 있는 채권자가 있는지를 확정해야하지만 그런 채권자가 없는 경우 재산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서는 주주의 의사가 아니라 자신의 신인의무에 따라야 한다는 의미이다. 즉 계약에 의하여 위탁된 것이 아닌 의무는 모두 이사에게 귀속된다고 본다. ②다른 하나의 특징은 이사제도가 소유와 경영의 분리현상을 강화한다는 점이다. 수인자에게 재산의 관리를 위임하는 경우에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현상이 발생하는데 주주는 이사에 대한 지시권이 없다는 점에서 대리인이나 수탁자에게 위임하는 경우에 비하여 그러한 분리현상이 더 강화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사제도는 이처럼 대리제도나 신탁제도와 크게 차이가 있으므로 이사, 대리인, 수탁자 중에서 어느 쪽을 활용할 것인가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이사의 경우에는 계약이 불명확한 경우에 공백을 메우는 권한은 잔여채무자인 이사에게 귀속된다는 점에서 잔여청구권자인 본인에게 그 권한이 귀속되는 대리나 신탁의 경우와 큰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다.

끝으로 저자는 현재 회사와 이사제도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지만 ①이사제도를 회사 이외의 다른 조직에도 적용하거나 ②회사가 이사를 두는 대신 대리인이나 주주에 의하여 운영되는 것을 허용할 가능성에 대해서 검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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