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은행의 자기자본규제의 근본적 결함

코로나가 완전히 물러간 탓인지 올해 들어서는 유난히 해외출장이 많았다. 여행 중에는 집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여유로운 경우도 있다. 전에는 비행기에서 읽을 만한 책을 고르려 책방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문제라면 책의 무게나 부피가 주는 부담이었는데 Kindle이 등장하고부터는 그런 고민에서 해방되었다. 사설이 길어졌는데 오늘은 최근 여행 중에 읽은 신간을 소개하기로 한다. Anat Admati & Martin Hellwig, The Bankers’ New Clothes: What’s Wrong with Banking and What to Do about It – New and Expanded Edition(Princeton University Press, January 9, 2024) 저자인 Admati는 스탠포드 경영대 교수이고 Hellwig는 독일의 경제학자이다.

책의 요지는 현재 은행에 적용되는 BIS의 자기자본비율인 3%(바젤III)는 너무 낮아서 새로운 금융위기의 발생을 방지할 수 없으므로 대폭 인상해야 하는데 그것이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실현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현행 비율 3%를 20-30%로 대폭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현재의 자기자본비율이 2007년의 금융위기 전에 적용되었더라도 그 위기를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 근거로 최근 있었던 SVB와 크레딧 스위스의 도산사례를 제시한다. 흥미로운 것은 BIS가 채택한 위험가중자산이란 개념이 얼핏 과학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정확할 뿐 아니라 남용되기 쉽다는 저자들의 비판이다. 저자들은 자기자본비율이 기준에 미달하는 은행에 대해서는 배당과 자사주취득을 제한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이 특히 많은 지면을 바쳐 비판하는 것은 자기자본비율의 인상이 결국 기업에 대한 신용제공을 위축시킴으로써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경제계와 주류학계의 반론이다. 저자들은 자기자본(capital)과 유보금(reserve)을 동일시하는 오해가 널리 퍼져있으며 자기자본비율을 높인다고 해서 반드시 기업에 대한 신용제공이 감소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폐수배출하는 기업의 규제가 그 기업의 비용을 상승시키는 반면에 사회의 손해를 감소시키는 것에 비유하여 자기자본비율을 높임으로써 은행도산을 줄이고 결과적으로 국민의 세금이 금융기관구제에 투입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거듭 역설한다. 요컨대 은행가들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을 대치시키면서 후자를 더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은행이 자금조달에서 증자 대신 부채를 선호하는 이유로 이자의 손금처리가 가능하다는 점을 주목하여 차입의 세법상 장점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도 제안한다.

이 책은 자기자본비율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는 저자들의 주장의 당부와 관계없이 은행규제의 핵심에 속하는 자기자본규제에 대한 이해를 돕고 뱅크런이 발생한 실제 사례를 쉽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 장점이다. 또한 금융규제의 개혁을 둘러싼 정치적인 역학관계를 파헤치는 부분도 눈길을 끈다. 그러나 이 책이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을 위한 것이라는 이유로 동일한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솔직히 조금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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