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의무를 보는 새로운 관점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서는 이사의 충실의무에 관한 상법 제382조의3에 “주주의 비례적이익”이나 “총주주”란 문구를 “회사를 위하여”란 부분에 추가하는 방향으로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학계에서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힘을 얻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견해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미국의 회사법에서 그 근거를 찾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실제로 미국 델라웨어주 판례는 이사의 신인의무가 회사 뿐 아니라 그 주주들에게 대한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명시한다. 그러나 정작 미국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찾기 어렵다. 마침 최근 이 문제에 관한 거창한 논문이 발표되었기에 소개하기로 한다. Zachary James Gubler, The Neoclassical View of Corporate Fiduciary Duty Law, University of Chicago Law Review, Vol. 91, No. 165, 2024. 저자는 Arizona State University Law School에서 회사법과 자본시장법을 가르치는 중견교수이다.

저자가 먼저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이사가 신인의무를 부담하는 상대방이다. 미국에서 신인의무의 상대방을 주주라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저자는 우리 상법과 마찬가지로 그 상대방을 회사로 보는 것이 전통적인 견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그러한 전통적인 견해를 3가지 측면에서 분석한다. ①먼저 회사의 목적으로 (1)이해관계자이익극대화와 (2)주주이익극대화로 구분된다. ②이어서 회사의 모델로 (1)팀프로덕션모델, (2a)본인-대리인모델, (2b)소유권모델, (2c)이사우위모델로 구분된다. ③은 회사의 지배구조에서 의사결정권의 주체에 따른 구분(저자는 이를 지배구조의 “수단”으로 표현한다)으로 (1)과 (2c)는 이사회, (2a)와 (2b)는 주주이다.

②의 네 가지 모델은 모두 현재 미국의 회사법학계에서 주장되는 것이지만 그중에서 가장 유력한 것은 (2a)의 본인-대리인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본인-대리인모델을 포함한 네 가지 모델이 모두 현실적으로 미국의 판례와 주주권에 관한 회사법규정을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한다고 평가한다. 먼저 회사법 판례와 관련한 평가와 관련하여 저자는 두 개의 판결, 즉 회사의 목적을 주주이익극대화로 본 Dodge v. Ford판결과 이사의 주식매수 시 거래상대방인 주주에 대해서 내부정보를 공시할 신인의무를 부담한다는 주장을 배척한 Goodwin v. Agassiz판결을 기준으로 삼는다. 나아가 주주권에 관한 회사법규정으로는 주주대표소송과 주주의 의결권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주류적 견해라고 할 수 있는 본인-대리인모델만 살펴보자면 저자는 주주가 의결권을 갖는 것은 당연하고 오히려 그것이 제한적으로만 인정되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또한 대표소송과 관련해서도 이사회가 제소청구의 무익성(demand futility)요건이나 경영판단원칙에 의하여 보호받는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기존의 모델이 현행 판례법과 제정법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판단에 따라 저자는 자신의 독자적인 견해를 제시한다(II장). 저자는 이해관계자이익극대화나 주주이익극대화 대신 영구적 자기자본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신의 모델을 영구적 실체모델이라고 부른다. 즉 주주이익극대화에서 주주를 제한하지 않는 기존의 견해와 달리 저자는 영구적 주주라는 가상적 존재를 설정하여 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추구한다. 영구적으로 존속하는 회사의 영구적인 주주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우에는 앞서 제시한 현행 판례법과 제정법을 모순없이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어서 저자는 이러한 자신의 견해가 지닌 함의와 아울러 그에 대한 비판에 대한 반론을 제시한다(III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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