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X 도산절차에서의 공익과 사익의 충돌

이 블로그에 올릴 문헌을 선택할 때 요즘은 특히 우리 현실과의 관련성(relevance)을 중시하고 있다. 오늘은 그런 원칙을 조금 제쳐두고 미국의 법현실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최신 문헌을 소개한다. Jonathan C. Lipson & David A. Skeel, FTX’d: Conflicting Public and Private Interests in Chapter 11, Stanford Law Review (Forthcoming 2025). UPenn의 Skeel교수는 이미 몇 차례 소개한 바 있는 도산법 대가이고 공저자인 Lipson교수는 Temple대 교수이다. 논문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가상자산거래소 FTX와 그 창업자인 Sam Bankman-Fried(SBF)가 관련된 대형 스캔들의 도산법적 측면을 다루고 있다. 논문의 서두에 스탠포드 로스쿨 교수로 있는 SBF의 부모와 인터뷰한 사실과 아울러 논문이 스탠포드 로리뷰에 실릴 예정이지만 SBF의 부모로부터 덕을 본 것은 없다고 밝히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논문은 도산절차에서의 공익과 사익의 충돌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제목을 내걸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FTX의 로펌인 Sullivan & Cromwell(S&C)의 부적절한 활동에 대한 비판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주된 내용으 간추리자면 다음과 같다. S&C는 FTX의 도산 전부터 그 법률고문으로 일하며 FTX가 고객자산을 분리보관하지 않는 등 문제가 있음을 알고도 그것을 감독당국이나 계약상대방에게 알리지 않았다. FTX가 재무상 위기를 맞이하자 S&C는SBF를 거짓말로 설득하여 FTX의 통제권을 자신이 선택한 도산전문가 Ray에게 넘기도록 이끌었다. FTX의 실질적 통제권을 장악하자마자 이들은 원래의 약속과 달리 바로 도산절차(형식적으로는 Chapter 11의 회생절차)의 개시신청을 함과 동시에 검찰에 SBF의 범죄행위를 고발하고 기소에 필요한 회사정보를 제공하였다. 또한 S&C는 도산절차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관여한 로펌으로서 이익충돌의 여지로 인하여 결격사유가 있음에도 도산절차에서도 FTX의 법률고문지위를 차지하였다. 그 후 회사재산을 특정인들에게 저가로 처분하는 등 FTX의 이익을 해치는 여러 행위를 저질렀고 그 과정에서 수억 달러에 달하는 변호사보수를 수령했다. 한편 도산절차를 감독하는 법무부 산하 U.S. Trustee는 조사를 위해서 조사관(examiner)의 선임을 추진하였으나 S&C는 자신의 잘못이 드러날 것을 우려하여 그에 반대하였다. (결국 연방 제3항소법원은 조사관의 선임을 결정했고 조사관은 지난 5월 2백여 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공개하였다. 이 논문은 그 보고서가 공개되기 전에 작성된 것이다.)

저자들은 FTX의 사례를 토대로 도산절차에 관련된 세 가지 공익을 제시한다. ①사법절차의 무결성과 독립성, ②부실처리의 효율성이란 도산절차특유의 이익, ③(미국에서 역사적으로 중요시했던) 철도운송의 보호와 같이 도산으로 위협받을 수 있는 기타의 공익. 논문에 따르면 위 공익들은 ①, ②, ③의 순으로 중요하며 도산절차에서 ③을 추구하는 것은 ①이나 ②를 훼손할 수 있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저자들은 FTX사례에서 S&C의 행동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위의 공익들이 충돌할 때 회사의 법률고문이 그 이익들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사익을 도모할 위험이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들은 S&C가 도산절차에서도 FTX의 법률고문의 지위를 계속 유지한 것은 위 ①의 공익과 충돌하고 FTX에 엄청난 손해를 끼친 Binance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것은 ②의 공익과 충돌한다고 주장한다.

논문은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면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먼저 I장에서는 도산절차에서 공익을 고려하게 된 역사적인 과정을 되짚어 본다. II장에서 V장까지는 FTX사례에 대한 연구이다. II장에서는 FTX의 연혁과 S&C의 역할, 특히 이익충돌이 문제되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III장에서는 S&C가 도산절차에서 법률고문지위를 차지하는 과정, 그리고 IV장에서는 조사관의 임명과정을 각각 살펴본다. V장에서는 S&C의 잠재적 이익충돌이 회사재산의 저가처분과 Binance에 대한 제소포기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도산절차에서 재산극대화가 저해되고 사법절차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었음을 주장한다. 끝으로 VI장에서는 이러한 이익충돌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채권자회사의 법률고문, 조사관, U.S. Trustee라는 세 가지 문지기의 역할을 제고할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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