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에 대한 기능적 분석

비트코인이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관심을 끌 무렵 동료들과 그것을 화폐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 논의한 일이 있다. 나는 그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졌으나 그 근거를 뚜렷하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오늘은 그 문제를 근본적인 시각에서 다룬 최신 논문을 소개한다. Steven L. Schwarcz, Money: A Functional Analysis, 30 STANFORD JOURNAL OF LAW, BUSINESS AND FINANCE issue no. 1 (forthcoming 2025). 금융법의 대가인 Schwarcz교수는 이 블로그의 단골손님인데 요즘 들어 거창한 테마의 논문을 자주 발표하고 있는 느낌이다.

논문은 화폐에 대한 기능적 분석을 토대로 그에 대한 규제를 논하고 있다. 저자는 화폐를 일반적으로 화폐의 기능으로 받아들여진 기능들을 수행하는 “권리”로 파악한다. 저자는 일반적인 화폐의 기능중에서 교환수단기능과 가치저장기능의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화폐는 낮은 거래비용으로 양도할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일종의 가치를 지녀야 한다. 강제통용력은 화폐에 반드시 필요한요소는 아니다. 그런 화폐에는 불환(不換)화폐(fiat currency) 뿐 아니라 디지털화폐도 포함된다. 디지털화폐에는 중앙은행디지털화폐인 Central Bank Digital Currencies(CBDC)는 물론이고 스테이블 코인과 일반적인 암호화폐를 포함시키고 있다. 불환화폐의 가치를 뒷받침하는 것은 정부가 그 가치를 안정시키기 위하여 나설 것이라는 기대와 아울러 많은 사람들이 그 가치를 인정할 것이라는 공통된 믿음이라고 보는 점은 흥미롭다. 저자는 이런 관점에 따르면 불환화폐는 반드시 정부가 발행한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전통적 화폐규제에 추가하여 화폐의 기능에 초점을 맞춘 기능적 화폐규제를 마련할 것을 주장한다. 그는 시장에서 화폐로 널리 이용되는 권리의 양도성이나 안정적인 가치를 해치는 시장의 실패를 시정함으로써 화폐의 기능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통적으로 금융규제는 시장에서의 폐해를 막는 소극적 역할에 그쳤지만 기능적 규제는 유익한 금융혁신을 촉진하는 적극적 역할도 수행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서론과 결론을 제외한 논문은 4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서론에 이은 II장에서는 양도성의 관점에서 이들 화폐를 살펴보고 III장에서는 가치의 관점에서 기존의 화폐와 디지털 화폐를 살펴본다. 논문의 핵심인 IV장에서는 이러한 화폐의 기능을 토대로 새로운 기능적 규제의 개요를 제시한다. 저자는 화폐로 널리 활용되는 권리의 저비용의 양도성과 가치의 안정성을 저해하는 시장실패를 시정하기 위한 방안들을 제시한다. 양도의 비용과 관련해서 저자는 특히 암호화폐가 과도한 에너지사용을 초래한다는 점을 주목한다. 가치의 안정성과 관련해서는 주로 스테이블 코인의 상환가능성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와 관련해서는 상환용 자산의 유지의무, 발행자의 채권자로부터 상환용 자산을 격리할 의무, 발행자의 사업이나 운영상의 위험을 통제할 필요성 등을 검토한다. 끝으로 V장에서는 기능적 규제의 정치경제적 측면을 논한다. 먼저 CBDC와 관련해서 미국이나 EU가 CBDC를 추진하는 이유는 중국의 디지털화폐나 민간발행의 스테이블 코인과의 경쟁에서 자신의 화폐인 달러나 유로화의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것임을 시사한다. 스테이블 코인과 관련해서는 스테이블 코인의 비중이 커지게 되면 정부의 통화정책에 대한 통제력을 위협할 수 있고 은행예금의 감소에 따라 자금조달비용이 증가할 우려가 있다는점 등을 언급한다. 그리고 일반 암호화폐, 즉 가치있는 자산에 의하여 뒷받침되지 않는 사기업발행의 디지털자산의 경우에는 적어도 소규모지급을 위해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정부는 그 사용을 촉진하기 보다는 소비자보호법의 적용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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