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회의체로서의 주주총회의 미래”란 제목의 포스트를 업로드한 적이 있다(2023.7.15.자). 그 포스트는 IT기술의 발전과 코로나위기의 발생으로 촉발된 주주총회의 변화를 짚어보는 일본 법률가들의 좌담회를 소개한 것이었다. (금년 8월 그 좌담회 기록은 이사회에 관한 좌담회 기록과 함께 “会社法における会議体とそのあり方”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그 포스트 말미에 나는 좌담회 참여자들이 이제 주주총회의 의사결정에는 반드시 회의개최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표결만 있다면 “심의”는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는 점을 적시한 바 있다. 그와 관련하여 오늘은 주주의 의결권 행사에 대해서 조금 다른 시각에서 분석한 미국 학자의 논문을 소개한다. Sarah C. Haan, Delegated Corporate Voting and the Deliberative Franchise, Seattle University Law Review, Vol. 47, No. 2, 2024. 저자는 버지니아주 소재 Washington & Lee 로스쿨에서 회사법을 가르치는 교수로 의결권제도를 역사적으로 분석한 논문이 많고 그 중 한편은 금년 초에 소개한 바 있다(2024.1.13.자).
저자는 의결권 행사의 의미가 의결권 위임제도의 영향으로 어떻게 변화해왔는가를 역사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논문을 시대적 변화를 중심으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눈다. I장에서는 위임장규제가 도입된 1938년 이전까지의 시기를, II장에서는 1930년대 이후 2022년까지 주주의 지시범위가 확대된 과정을, 그리고 III장에서는 변화된 환경에서의 의결권행사에 관한 펀드의 역할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다.
I장에서 저자는 위임장규제가 도입되기 이전의 위임장 실무를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의결권 위임은 거의 대부분 회사경영진에 백지위임장을 송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주주는 위임장을 송부하거나 아니면 투표를 포기하는 양자 중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주주가 자신의 선호를 경영진에 전달할 방도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위임장을 받은 경영진으로서는 주주들의 선호를 주주가치극대화라고 하는 공통분모에서 찾게 되었다. 미국에서 정치세계에서의 의사결정은 숙의(deliberation)를 중시하였음에 비하여 회사에서의 의사결정은 위임장의 확산으로 인하여 숙의란 요소는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II장에서 저자는 위임장규제가 도입되고 주주의 지시범위가 확대되어 의안의 찬반은 물론이고 개별이사후보에 대한 찬반의 표시도 가능하게 된 과정을 서술한다. 이처럼 주주의 선택지를 반영할 여지가 늘어남에 따라 의사결정에 주주들의 숙의를 반영할 여지도 생겨났고 주주들의 공통분모인 주주이익극대화를 넘어서 각 주주의 개별적 선호를 반영할 가능성도 열리게 되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III장에서 저자는 주주의 개별적 선호(특히 ESG에 관한 선호)를 회사의사결정에 반영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서 언급한 후 펀드의 역할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저자는 펀드를 정치세계에서의 정당에 비하고 있는데 자산관리자가 정책플랫폼을 만들고 그곳에 의결권행사지침을 공개하는 방법으로 투자자들을 유치하고 이들이 자신의 선호를 회사의사결정에 반영하는 것을 도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