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를 시작한 초기에 독일판 엔론사태라고 할 수 있는 Wirecard스캔들을 소개한 바 있다(2020.7.9.자). 이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은 스캔들은 여러 방면에서 소송으로 이어졌는데 마침내 지난 9월 Wirecard의 이사들의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하급심판결(LG München I 05.09.2024 – 5 HK O 17452/21)이 선고되었다. 그 판결은 여러 논점을 포함하고 있는데 오늘은 그중에서 특히 흥미를 끄는 대목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판결의 소개는 다음 평석을 참고하였다. Bachmann: Organhaftung im Wirecard-Fall, NZG 2024, 1598. 저자는 베를린대학의 교수로 회사법분야의 중견 학자이다.
4년 전 포스트에서는 그 사건의 스캔들적 측면에 초점을 맞춰 소개했으나 그에 관련된 경영자들의 형사책임을 묻는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고 이번 판결에서 문제삼은 것은 회사 이사들의 민사책임이다. 책임의 대상이 되는 행위는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①거래처에 대한 무담보대출이고 다른 하나는 ②그 거래처가 발행한 사채의 인수이다. 뮌헨지방법원은 충분한 신용평가를 거치지 않은 경영이사들의 신용제공과 채권투자는 주의의무의 위반이고 경영판단원칙은 적용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법원은 감독이사들의 의무위반도 인정하였으나 손해와의 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그들의 책임을 부정하였다. 그 근거로 법원은 설사 감독이사들이 거래를 반대했더라도 경영이사들이 그것을 무시했을 것이라는 점을 들었다. 이에 대해서 저자는 비판적이지만 그에 대한 더 이상의 언급은 생략하고 경영이사의 책임에 대해서만 논의하기로 한다.
판결에서 먼저 다룬 논점은 증명책임이다. 법원에 따르면 회사가 의무위반의 가능성을 증명하면 피고가 주의의무를 이행했음을 증명할 책임이 있다. 독일 주식법은 경영판단원칙을 천명하고 있는 바 그에 따르면 경영이사가 적절한 정보를 토대로 회사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서 취한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93조1항2문).
①과 관련하여 독일 대법원은 금융기관의 무담보대출에 대해서 경영판단원칙에도 불구하고 의무위반을 인정한 바 있다. 뮌헨지방법원은 Wirecard가 금융기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담보대출이 “신중하고 양심적인 경영자의 관점에서”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손해위험이 높고 달리 그것을 실행할 합리적인 경영상의 이유가 없는 경우에는 경영판단의 범위를 초월한다고 판시하였다. 특기할 것은 그 대출은 거래처와의 거래관계를 확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었다는 반론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그래도 대출은 대출이다”라는 말로 그 반론을 배척하였다. 저자는 이런 법원의 논리에 대해서 그것을 확대적용하는 것은 비합리적일 수 있다고 비판한다. 한편 ②와 관련해서 법원은 due diligence가 없었던 것을 중요시하고 있는데 오랜 거래처의 경우에도 그것을 생략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선언하였다.
판결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 논점 중 하나는 문제의 거래가 자신의 권한범위 내에 있지 않다는 이사의 항변이다. 이와 관련해서 법원은 그런 이사의 경우에는 감시의무를 부담하는데 의심스런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신뢰의 원칙(Vertrauensgrundsatz)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본다. 저자는 법원이 신뢰의 원칙을 엄격한 요건하에서만 인정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신뢰의 원칙”에서 “불신의 원칙”(Misstrauensprinzip)으로 변화하였고 이는 실무상 문제를 발생시킨다고 지적한다.
그밖에도 흥미로운 논점이 많지만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이사의 계약서검토의무이다. 법원은 이사 중 하나인 CPO(Chief Product Officer)가 대출계약서를 읽지 않고 동의했다는 점을 의무위반의 근거로 들었다. 저자는 이러한 검토의무는 계약의 중대성이나 기업의 규모나 업종에 따라 유연하게 해석한다 하더라도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계약의 핵심내용과 위험에 대해서 이해한 경우에는 그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