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에서는 주로 미국을 비롯한 외국의 최신 논문을 주로 소개해왔다. 외국문헌은 주제의 참신성이나 관점의 독창성 면에서 배울 점이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 현실과의 관련성(relevance)이란 면에서는 다소 거리가 느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 현실과의 관련성만을 척도로 삼는다면 아무래도 우리 학자들의 문헌을 택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주로 국내 연구자들을 염두에 두고 운영하는 이 블로그에서는 국내문헌에 관한 정보는 구득이 보다 용이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부러 소개를 자제해왔다. 그러나 때로는 예외를 인정해야 할 경우도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예외의 경우로 우리 자본시장에서 많은 관심을 끌었던 중복상장에 관하여 최근 발표된 연구보고서를 소개하기로 한다. 이은정, 우리나라 지배주주는 왜 중복상장을 선호하는가: 자회사 상장을 통한 지배주주의 지배권 보존효과 분석(ERRI 이슈&분석 2024-08호 2024-12-12).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인 저자는 공인회계사로 우리 기업지배구조에 관해서 유용한 보고서를 활발하게 발표하고 있는 분이다.
중복상장은 통상 지배주주가 존재하는 모회사(출자회사)와 그 자회사(피출자회사)가 모두 상장되어 있는 경우를 가리킨다. 중복상장은 ①상장회사가 기존 사업부문을 자회사로 분사하여 상장하거나(이른바 쪼개기상장) ②상장회사가 다른 상장회사의 지배주식을 취득한 후에도 상장상태를 유지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최근 많이 문제된 물적분할은 ①의 쪼개기상장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중복상장중에서 출자회사에 지배주주가 있는 경우에 초점을 맞춰 이들 지배회사가 중복상장을 선호하는 이유를 분석한다. 저자는 그 이유를 중복상장이 지배주주가 자기 자금을 투자함이 없이도 자신의 경영권을 유지하며 자회사의 유상증자를 실시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점에서 찾고 있다. 모회사가 완전자회사의 주주배정증자에 응하려면 적지 않은 자금이 필요하고 그 자금조달을 위해서는 모회사도 유상증자를 해야할 경우가 있는데 지배주주가 자신의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자금으로 유상증자에 응할 필요가 있다. 만약 자회사가 IPO를 통해서 일반주주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면 모회사는 자신의 자금을 투입하지 않고도 자회사에 대한 지배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중복상장은 자회사의 자금조달 시에 지배주주의 자금소요를 줄여준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한 장점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로 저자는 엘지화학의 물적분할을 든다. 엘지화학에서 물적분할을 통해 완전자회사가 된 엘지에너지솔루션은 IPO를 통해 12조75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는데 만약 IPO대신 주주배정증자를 시도했다면 모회사인 엘지화학 역시 신주인수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주주배정증자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 경우 지주회사인 ㈜엘지가 지분율을 유지하려면 4조2767억원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엘지가 다시 주주배정증자를 시도하는 경우 ㈜엘지의 지배주주쪽에서 자금부담 때문에 증자참여를 포기한다면 그 지분율은 41.7%에서 28.29%로 감소할 것이다. 저자는 엘지화학이 쪼개기상장을 택한 것은 이러한 지분희석을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본다.
저자는 중복상장을 재벌이 피라미드구조를 통하여 기업영역을 확장하는 수단으로 파악하고 그 문제점으로 경제력집중과 모회사와 자회사 주주간의 이익충돌을 든다. 저자는 개선안으로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한편 이익충돌거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중복상장내지 “carve out”은 자회사차원의 스톡옵션발행이나 전략적제휴관계의 수립 등 나름의 장점도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엄격히 말하면 저자가 걱정하는 경제력집중은 회사법과 직접 관련된 이슈는 아니다. 그러나 저자는 그것이 소규모투자로 대규모기업을 지배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문제삼는 것 같다. 중복상장이 그런 기능을 갖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는 중복상장은 차등의결권주식은 물론이고 나아가서는 포이즌필과 같은 경영권방어수단과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그런 논리에 따르면 만약 우리나라에서도 차등의결권주식의 발행이 허용되었다면 중복상장은 상당히 감소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중복상장 비율(18%)은 다른 나라, 특히 미국(0.35%)에 비해서 현저하게 낮다고 한다, 차등의결권주식이나 경영권방어수단은 소유구조가 복잡해지는 것을 막고 그로 인하여 이익충돌거래가 발생할 여지를 감소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오히려 중복상장보다 우월한 면이 있다. 단순히 쪼개기상장이나 중복상장만을 분리하여 논의하기 보다 종합적 관점에서 우리 회사법제를 검토해보아야할 시점이 도래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