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민이 좋은 변호사가 될 수 있는가?

경제학분야에서 각광을 받는 기본개념으로 대리문제(또는 대리비용)이란 것이 있다. 대리문제는 대리인과 본인의 이익이 불일치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대리인에 신인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대리인이 본인의 이익을 추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본인이익의 추구에도 한계가 있어 대리인이 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본인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신인의무 위반에 해당한다. 문제는 대리인의 행위가 위법은 아니지만 사회의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는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오늘 소개하는 논문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Claire Hill et al., Bad Agent, Good Citizen? 88 Fordham Law Review 1631(2020)

저자들이 대상으로 삼은 대리관계는 변호사와 고객의 관계이다. 저자들은 대리인의 행동이 본인의 이익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따라 좋은/나쁜 대리인으로, 사회의 이익(공익)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에 따라 좋은/나쁜 시민으로 나눈다. 그에 따르면 대리인은 다음 4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➀좋은 대리인/좋은 시민; ➁좋은 대리인/나쁜 시민; ➂나쁜 대리인/좋은 시민; ➃나쁜 대리인/나쁜 시민. 대리인이 ➀을 추구하고 ➃를 회피해야 함은 물론이다. 저자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➁와 ➂이다. ➁의 예는 변호사가 위법은 아니지만 법정신에는 어긋나는 길을 고객을 위해 찾아 주는 경우이다. 저자들은 트럼프의 골프장이 염소 8마리가 있다는 이유로 “농장”으로 간주되어 연간 세금을 거의 9만달러를 절약한 사례를 들고 있다. ➂의 예는 변호사가 고객에게 법이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환경오염기준을 지키도록 조언하여(overcompliance) 고객의 이익을 해치는 경우이다. ➃의 예로는 화해를 통한 변호사보수를 목적으로 위협소송(frivolous suit)을 제기하는 변호사를 들고 있다.

변호사의 딜레마는 결국 ➁와 ➂중에서 선택해야하는 경우이다. 즉 공익을 추구하다보니 고객의 이익에 반하여 나쁜 대리인이 되거나 반대로 고객이익을 추구하다보니 공익이 침해되어 나쁜 시민이 되는 경우이다. 저자들은 ➁와 ➂에 해당할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행히 ➀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어떤 행동이 고객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그리고 공익에 부합하는지는 복잡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런 주장의 근거이다. 먼저 ➂과 관련하여 변호사가 공익을 추구하는 것이 반드시 고객에게 손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장기)이익에 부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즉 ➂이 아니라 ➀에 해당할 여지가 많다고 하고 있다. 또한 ➁와 관련해서 법률회피행위도 반드시 공익에 반한다고 볼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조세회피행위는 정부역할을 신뢰하는가 또는 불신하는가에 따라서 공익침해여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➀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➁와 ➂ 사이에서 선택해야만 하는 경우가 존재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저자들은 고객의 장기이익에 반드시 부합하지 않는 경우에도 변호사가 공익을 추구할 여지를 어느 정도는 인정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그 경우에는 고객에게 그 사실을 알려서 고객이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변호사들의 업무환경이 미국에서는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각박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저자들의 이런 주장이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비치는 것이 사실이다.

이 글을 알게 된 것은 Bainbridge교수의 블로그를 통해서였다. 블로그에는 저자들의 포스트가 올라와있다. 그 포스트는 민사사건의 맥락이 아니라 형사사건의 맥락에서의 변호사의 역할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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