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지배구조의 수렴에 관한 글에 비해서 회계규범의 수렴에 관한 글은 별로 없다. 오늘 소개할 글은 바로 회계규범의 수렴에 관한 것이다. Martin Gelter, Accounting and Convergence in Corporate Governance: Doctrinal or Economic Path Dependence? Research Handbook on Comparative Corporate Governance (Afra Afsharipour & Martin Gelter eds., Edward Elgar Publishing, Forthcoming)
국제회계업계는 회계규범의 수렴을 위한 노력을 해왔으나 아직도 유럽과 미국의 회계규범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EU에서는 상장기업의 연결재무제표는 IFRS에 따라 작성하도록 하고 있지만 다수의 회원국들은 개별기업의 재무제표는 국내회계기준에 따라 작성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자국기업이 US GAAP 대신 IFRS를 적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정치적 성격이 강한 기업지배구조에 비하여 기술적 성격이 두드러진 회계규범의 경우에 이처럼 불일치가 존재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저자는 그런 차이의 원인을 경로의존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경로의존성을 경제적인 것과 법리적인(doctrinal) 것으로 나눈다. 경제적 경로의존성은 기득권자의 이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면 법리적 경로의존성은 우연히 채택했던 과거의 판결이나 입법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단 법리적 구조가 형성되면 법률가들은 그것의 유지에 이해관계를 갖기 때문에 근본적인 변화에 저항한다는 점에서 법리적 경로의존성도 경제적 유형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회계규범의 경로의존성의 원인을 회계사업계, 특히 Big 4로 불리는 대규모 회계법인에 속하는 회계사들의 이익에서 찾고 있다. 회계규범이 넓은 의미로는 법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여기서 경로의존성은 법리적 성격도 포함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유럽에서 기존의 국내 회계규범은 원가기준에 기초한 것으로 일반 채권자이익에는 부합했으나 자본시장 투자자에게는 적합지 않았다. 결국 상이한 회계규범을 통일하고 자본시장을 육성할 필요성 때문에 IFRS를 채택하게 되었는데 이는 대형 회계법인들이 국내법인들과의 경쟁에서 자신들의 시장점유율을 높이는데 유리하였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이미 자본시장에 적합한 회계규범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회계규범을 도입함으로써 이들 대규모 회계법인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양 지역 간에 존재하는 투자자소송의 차이도 이러한 회계규범의 차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저자의 견해이다. 미국에서는 투자자소송이 왕성하기 때문에 회계사들이 원칙에 기초한(principles-based) IFRS보다 규칙에 기초한(rules-based) US GAAP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가까운 장래에 바뀔 전망은 별로 없으니 회계규범의 차이는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끝으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이 글에서 저자는 독일과 프랑스에서의 회계규범의 법적 지위와 그 변천을 비롯하여 EU와 미국의 회계규범의 골자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곁들이고 있는데 큰 그림을 파악하는데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