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에서의 주주간계약의 역할

블로그에 소개할 외국문헌을 고를 때에는 이론적으로나 실무적으로 의미 있는 것에 눈길이 가게 된다. 연일 많은 논문이 발표되고 있지만 적당한 것을 찾기는 쉽지 않다. 특히 우리 법률가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문헌을 만나기는 어렵다. 그런데 오늘 소개할 논문은 이런 면을 고루 갖춘 이상적인 대상이다. Gabriel V. Rauterberg, The Separation of Voting and Control: The Role of Contract in Corporate Governance (2020)

저자는 Michigan Law School의 젊은 조교수로 4.25자 포스트에서 소개한 “The New Stock Market”이란 책의 공저자이기도 하다. 이 논문은 지배구조와 관련한 주주간계약의 역할을 이론적, 실증적, 법리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제목에서 “표결(voting)과 지배(control)의 분리”라고 한 것은 형식적으로 표결권이 주주에게 속하지만 그에 대한 통제권을 계약을 통해 타인에게 이전함으로써 발생하는 현상을 “분리”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본론에 앞서 저자는 2019년에 있었던 두 사례를 소개하고 있는데 모두 우리은행 민영화 사례와 관련해서 흥미를 끈다. 첫 번째 사례는 Uber의 IPO에 관한 것으로 IPO시에 의결권 과반수를 점하는 주요주주들이 각각 이사후보를 추천하여 이사회를 구성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 주주간계약은 기업공개 후 실효되는 것이었다. 두 번째 사례는 주주간계약을 체결한 주주들은 지배주주로 볼 수 없다는 델라웨어주 대법원 판례이다(Sheldon v. Pinto, A.3d , 2019 WL 4892348 (Del. Oct. 14, 2019)). 우리은행 민영화 사례에서는 주식을 매각하는 정부의 주도로 과점주주라고 불리는 일부 주요주주들에게 이사후보추천권을 주기로 약속하고 실제로 그들이 추천한 후보를 이사로 선임했으나 그 과정에서 정식의 계약은 체결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계약을 체결하면 과점주주들이 자본시장법상 대량보유보고의무의 적용을 받을 뿐 아니라 나아가 은행법상 대주주에 해당하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주주간계약의 이론적 고찰은 2장과 3장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다. 2장에서는 사적자치의 수단이란 면에서 주주간계약을 정관(부속정관 포함)과 대비하여 살펴보고 주주간계약이 표결, 제소, 처분에 관한 주주 권한을 제약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을 실제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나아가 이런 주주권한의 제약은 정관을 통해서도 가능한데 실제로는 주주간계약이 더 선호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3장에서는 그 이유를 주주간계약이 정관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더 자유롭다는 데에서 찾고 있다. 법원은 회사법상 주주의 의결권을 정관으로 수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제약을 가하는데 계약에 의한 수정에 대해서는 훨씬 더 유연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저자는 정관자치를 더 엄격하게 규제하는 이유를 정관은 계약과 달리 일부 주주의 의사에 반해서도 변경될 수 있는 점에서 찾고 있다.

주주간계약의 실증적 고찰에 해당하는 4장에서는 주주간계약은 통념과 달리 폐쇄회사에서만이 아니라 공개회사에서도 많이 이용됨을 지적하고 있다. 지난 6년간 기업공개한 회사의 약15%가 주주간계약의 적용을 받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주주간계약의 실제 사례를 여러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내용면에서 가장 일반적인 것은 이사회구성에 관한 것이지만 합병과 같은 특정 주요거래에 대해서 특정 주주의 거부권을 규정하는 경우도 일부 존재한다. 저자는 과반수 계약이 특정 주주의 이사후보추천권을 인정하고 선임을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할 회사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저자는 또한 주주간계약을 채택하는 회사와 주주들의 특성에 관한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주주간계약의 법리적 고찰은 5장과 6장에 담겨져 있다. 5장에서 저자는 기업공개 후의 주주간계약을 주주들 사이의 수평적계약과 주주와 회사 사이의 수직적계약으로 나누고 수평적계약이 수직적계약에 비하여 당위적 차원에서 더 존중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다. 6장에서는 수직적계약과 수평적계약의 법리적 쟁점을 각각 검토한다. 수직적계약과 관련해서는 ➀회사가 구속력 있는 약정을 체결할 수 있는 범위와 ➁정관으로 배제할 수 없는 주주의 제정법상의 권리를 계약으로 포기할 수 있는 경우의 문제를 검토한다. 수평적계약과 관련해서는 주주간계약의 당사자들이 지배주주에 해당하는 경우에 대해서 검토한다.

끝으로 저자는 회사법상의 기본적인 법리와 관련하여 주주간계약의 시사점을 살펴본다(7장). 저자는 계약상 권리를 통한 주주의 지배 강화가 확산됨에 따라 회사법상의 다음과 같은 기본 법리를 유지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➀이사회에 대한 지배에는 신인의무의 구속이 따르지만 계약상의 권리행사는 그렇지 않다.

➁주주는 잔여통제권(residual rights of control)을 갖지만 다른 이해관계자들을 계약에 의한 보호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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