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책 봉별기

이상(李箱)의 소설에 봉별기(逢別記)란 것이 있다. 기생 금홍과의 만남과 이별의 과정을 소재로 한 자전적 소설이다. 애처롭게 단조로운 내 애정사에 봉별기의 소재가 될 만한 일화가 있을 턱이 없다. 설사 있다 해도 아직은 그런 이야기를 토로하고도 무사히 넘어갈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대신 학문인생의 반려자라 할 수 있는 서책에 대한 봉별기라도 풀어보기로 한다.

교수란 운명적으로 책을 떠날 수 없는 존재이다. 특히 나처럼 범(汎)문과에 속하는 사람은 평생 책에 기대어 살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책을 구입하는 것은 마치 요리사가 음식재료를 사는 것 같은 일상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멋쟁이 여성이 옷을 사는 것과 비슷한 면도 있다. 딱히 읽을 생각도, 여유도 없으면서 왠지 놓지 못하고 그냥 사 들고 오는 일이 왕왕 있다. 그런 증상이 심해지면 책을 사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일종의 병에 걸리게 되는데 학교 주변에는 그런 병적 수집가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이들은 새로 구입한 책에 장서인을 찍으며 희열을 느끼고 서재를 가득 메운 책들을 바라보며 마치 명품 옷들로 가득 찬 드레스 룸을 보는 것 같은 만족감교수란 운명적으로 책을 떠날 수 없는 존재이다. 특히 나처럼 범(汎)문과에 속하는 사람은 평생 책에 기대어 살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책을 구입하는 것은 마치 요리사가 음식재료를 사는 것 같은 일상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멋쟁이 여성이 옷을 사는 것과 비슷한 면도 있다. 딱히 읽을 생각도, 여유도 없으면서 왠지 놓지 못하고 그냥 사 들고 오는 일이 왕왕 있다. 그런 증상이 심해지면 책을 사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일종의 병에 걸리게 되는데 학교 주변에는 그런 병적 수집가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이들은 새로 구입한 책에 장서인을 찍으며 희열을 느끼고 서재를 가득 메운 책들을 바라보며 마치 명품 옷들로 가득 찬 드레스 룸을 보는 것 같은 만족감을 얻는 것이다. 나는 단연코 그런 환자는 아니지만 학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나름 적지 않은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책 구입의 경력을 돌이켜보는 것은 내 지나간 인생을 회고하는 것과 얼추 같은 셈인데 그 역사도 대충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제1단계는 곤궁기로 책 살 돈이 모자라 늘 쩔쩔매던 시절이다. 대충 1990년대 말까지는 그런 어려움을 겪었다. 제2단계는 풍요기로 비교적 금전에 여유가 생겨 책을 왕성하게 사들이던 시절이다. 대체로 2000년대 초부터 퇴직 2-3년 전까지 기간이 이에 해당한다. 그 후에는 제3단계인 일종의 냉각기가 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책다운 책을 본격적으로 사서 읽기 시작한 것은 아무래도 대학입학 후의 일이 아닌가 싶다. 아르바이트 덕분에 수중에 책을 살 정도의 돈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신간은 종로에 있는 종로서적, 헌책은 청계천 헌책방에서 구입하곤 했다. 때로는 범한서적이라는 양서(洋書)전문서점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워낙 귀한 것이다 보니 양서에 대해서는 경외심 같은 것을 품게 되어 어디서 이름을 들어본 적이라도 있는 책을 만나면 공연히 사고 싶은 마음이 끓어오르곤 했다.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 영어판이나 보들레르의 악의 꽃 불어판은 순전히 그런 지적 허영심으로 구입한 책이다. 한두 페이지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어딘가 처박아 두었지만 그런 허황된 버릇은 오래 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대학 1학년 겨울방학 때 일본어를 배우고 나서는 주로 법서였지만 일본서적도 탐내기 시작했다. 당시 광화문 근처에는 일본 책을 파는 헌책방이 있었는데 엔화가 싸서 책값이 그렇게 비싸게 느껴지진 않았다. 한번은 책 내지에 김XX라는 장서인이 찍힌 책을 구입한 일이 있다. 그 분은 바로 얼마 전에 작고한 중견 행정법학자였는데 장서가 헌책방에 나돈다는 사실에 왠지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두 번에 걸친 미국 유학시절도 책에 얽힌 추억이 많다. 늘 쪼들리던 시절이라 교과서 이외의 책을 사는 데는 큰마음을 먹어야 했다. 하바드 스퀘어에 있는 Harvard Book Store는 번질나게 드나들었지만 정작 책을 구입한 적은 거의 없었다. 1년에 한번은 대학출판부에서 학교마당에 책들을 늘어놓고 모두 1달러에 파는 행사가 있었다. 그 때 유명하던 존 롤즈의 정의론을 구입하고 한없이 뿌듯했다. 시애틀에서 공부할 때는 결혼한 상태였지만 가난한 유학생의 처지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래도 이젠 학계로 진출하기로 마음을 굳혔던 터라 자료를 수집하는데 각별히 신경을 썼다. 상법 뿐 아니라 앞으로 강의할 가능성이 있는 분야의 기본서는 모두 욕심을 냈기 때문에 사고 싶은 책에 비해 수중의 돈은 턱없이 부족했다. 비용절약을 위해 책을 구입하는 대신 복사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사리 복사와 제본을 마친 자료들을 나중에 거의 펼쳐보지도 못한 채 내버릴 때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책을 사지 못하고 복사하는 딱한 팔자는 1990년 방문한 독일에서도 계속되었다. 이미 명색이 교수였고 조건이 좋다는 훔볼트재단 장학금까지 받았으니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주택사정이 최악인 뮌헨에서 살다보니 집세로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가 생활비마저 쪼들렸다. 독일 책값도 싸지는 않아서 일부 단행본은 휴일 텅 빈 연구소에서 직접 복사하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본 조교가 너는 왜 그렇게 복사기 앞에만 있느냐고 놀리던 기억이 있다. 당시 뮌헨에서 같이 지내던 경도대학 민법전공의 야마모토(山本敬三)교수는 생활비의 상당부분을 도서예산으로 떼어 놓고 책을 엄청나게 많이 구입하고 있었다. 어차피 일본 집값은 너무 비싸서 집을 살 수 없는 형편이니 대신 책이라도 마음껏 구입한다던 그의 말을 듣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중 이야기지만 그는 민법교과서가 베스트셀러가 되어 아마도 이제는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책을 가장 많이 산 곳은 아마도 일본일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사태 전에는 하도 자주 들르다 보니 아마존을 통하기보다 직접 서점에서 보고 사는 편이 더 편리했다. 일본에서도 한참은 비싼 책 값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1980년대 후반 어느 날 동경대 앞 서점에 같이 들른 이와하라(岩原紳作)교수가 “寺西重郞, 日本の経済発展と金融(1982)”이란 책을 서가에서 빼서 내게 주며 권했다. 얼른 가격을 살펴보니 8천엔이나 했다. 너무 거금이어서 부담스럽다고 솔직히 말하며 슬그머니 다시 꽂는데 몹시 면구스러웠다. 이와하라교수야말로 중증 장서가였는데 그의 연구실에 가면 전공인 상법 관련 美英獨佛日 서적은 물론이고 민법, 소송법, 금융, 경제에 관한 책이 빽빽한 서가로 미로를 이루어 내가 앉을 자리도 제대로 없었다. 그는 집에도 그만큼의 책이 있다고 했다. 동경대교수들은 도서구입예산이 따로 있는지 거의 책값은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책을 구입하고 있었는데 그 점이 몹시 부러웠다. 서울대에서도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연구비나 바우처를 이용해서 책을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는데 그 때부터 제2단계인 풍요기가 시작되었다.

일본에서 초기에는 주로 동경대 근처 서점을 애용했다. 홍고(本鄕)캠퍼스 근처에는 작은 책방들이 많았는데 스즈키(鈴木)서점이란 작은 책방에서는 5%를 할인해주는 바람에 자주 들르곤 했다. 1995년 동경대에 객원조교수의 신분으로 머무를 때는 캠퍼스내의 생협(生協)을 이용했는데 그곳의 할인혜택도 매력적이었다. 당시 칸다(神田)의 고서점도 몇 차례 둘러본 일이 있다. 특이한 것은 한국에서는 헌책은 새 책보다 싼 것이 보통인데 일본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원래 정가보다 몇 배 높은 가격이 붙어있는 경우도 많았는데 놀라운 것은 그 가격이 책의 학문적 가치를 거의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점이었다.

동경대 방문을 마치고도 일본은 셀 수 없을 만큼 방문했다. 한동안은 신주쿠(新宿)의 키노쿠니야(紀伊國屋)란 서점을 들르곤 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내 단골은 동경역 앞의 마루젠(丸善) 서점으로 바뀌게 되었다. 동경에 갈 때 마다 한번은 꼭 들르지만 두 번 이상 들르는 적도 많다. 마루젠은 얼마든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다. 법률, 경제, 정치 관련 책이 있는 1층도 그렇지만 역사, 철학 등 인문서적들이 진열되어 있는 2층에서 스멀스멀 솟아오르는 수집욕을 억누르며 책을 펼쳐보다 보면 시간 가는 것을 잊게 된다.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1910년대 후반 중국의 傅斯年이나 羅家倫 같은 저명한 학자들도 마루젠(아마도 상해지점?)에서 책을 구입했다고 한다. 한편 교토에 갈 때마다 들르는 곳은 “준쿠도”(ジュンク堂)란 서점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마루젠과 같이 나오는 것을 보면 아마도 마루젠과 계열관계에 있는 모양이다. 그곳에서는 5천엔 이상 구입하는 고객에겐 작은 초록색 bag을 줬는데 연구실에서 강의실로 이동할 때 교재와 법전을 담아가기 편리해서 갈 때마다 하나씩 받곤 했다.

내가 중국책을 구입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이후의 일이다. 처음 들렸던 곳은 타이페이의 청핑(誠品)서점이다. 점포가 여럿 있지만 대만대학 앞에 있는 아담한 지점과 그보다 규모가 훨씬 큰 시내 본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분위기를 맛보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 책을 구입한 것은 2011년 10월 북경 인민대에 체류할 때가 처음인 것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중국 책값은 무척 저렴해서 그야말로 아무런 부담 없이 마음껏 책을 살 수 있었다. 내 중국어 실력이 부족해서 빨리 읽어낼 수 없는 것이 문제일 뿐이었다. 당시 내가 자주 찾던 곳은 인민대 근처의 신화(新华)서점이었다. 그곳 2층에는 툭 트인 광활한 공간에 온갖 종류의 서적들이 그득했다. 그런데 책 못지않게 관심을 끌었던 것은 1층에서 판매하는 CD였다. 그곳에서 구입한 이중텐(易中天)의 백가강단 강의를 시청하며 저녁시간을 보내던 것이 내 일상이었다. 그렇지만 가장 인상적인 책방으로는 뭐니뭐니해도 청화대 앞 만성서원(万圣书园)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요즘은 보기 드문 옛날 책방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곳은 법서는 별로 없지만 文史哲에 관한 서적은 풍부했다. 법학이나 사회과학 책들은 표지 디자인이 좀 촌스러운데 인문서적은 한문 서체 탓인지 우아해서 눈길을 끄는 경우가 많았다. 비록 한번 밖에 가보지 못했지만 서점의 규모로는 상해의 슈청(书城)이란 서점이 압권이었다. 그러나 크기만 할 뿐 분위기가 너무 별로여서 다시 찾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밖에 떠오르는 곳은 뉴욕과 싱가폴의 책방이다. 뉴욕에는 2001년과 2016년 한 학기씩 머물렀다. 두 차례 모두 혼자 지내다보니 심심해서도 책방을 자주 찾았다. 2001년에는 링컨센터 옆 Barnes & Noble에 자주 갔는데 특히 전기(傳記)류의 책이 많았던 기억이 있다. 책도 책이지만 옆에 있는 Tower Records에서 클래식음악 CD를 더 많이 구입했던 것 같다. 2016년 NYU를 방문했을 때는 근처의 Strand란 서점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文史哲에 관한 책이 많은 그곳은 헌책방을 겸한 것 같은 곳이어서 다른 곳에서 찾기 어려운 책들을 염가에 살 수 있었다. 북경의 만성서원처럼 지적인 분위기가 좋아 틈만 나면 들러보곤 했다.

싱가폴의 키노쿠니야(紀伊國屋)도 내가 애호하는 서점이다. 싱가폴은 한 달을 머문 것만 해도 세 차례나 된다. 키노쿠니야의 가장 큰 매력은 영어책은 물론이고 일본책과 중국책까지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그 세 가지 언어의 책을 동시에 살 수 있는 서점은 세계에서 그곳이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싱가폴은 경제적으로는 풍요롭지만 문화적으로는 다소 아쉬움이 느껴지는 곳인데 그곳에서만은 숨통이 트이는 느낌을 받곤 했다. 시내 한 복판에 있고 에어컨이 잘되어있는 곳이어서 저녁을 먹은 후에도 잠시 들러 눈요기를 하곤 했다.

그밖에도 여러 나라의 책방을 순례하였다. 구경에 그치지 않고 책을 좀 산 곳으로는 홍콩과 영국을 꼽을 수 있다. 홍콩 센트럴의 Bloomsbury란 전문서점은 주로 영국 책을 취급했는데 너무 비싸서 여러 차례 들렀지만 몇 권 밖에 사지 못했다. 영국 책은 주로 런던시내의 Hammick‘s란 전문서점에서 구입했다. 최근에는 옥스포드에 있는 서점들을 들렀는데 특히 옥스포드대 출판부 서점이 편리했다. 프랑스 파리에서도 1999년 한번 서점에 들른 일이 있다. 소르본느대학 앞의 작은 법서전문서점이었는데 집사람이 근처 공원을 산보하는 동안 들러 회사법에 관한 책을 몇 권 사들고 급히 나왔다. 그러나 프랑스법은 좀체로 들여다 볼 일이 없어 책을 사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말았다.

가장 최근에 방문한 외국 도시는 지난 1월 한 달을 보낸 호주 멜버른이다. 2000년대 초 잠시 방문했을 때는 멜버른대 근처 책방에서 회사법 책을 두어 권 사온 기억이 있다. 이번에도 몇 차례 서점을 물색해보았으나 시내에서도 전문서점은 찾을 수 없었다. 혹시나 하고 들렀던 제법 큰 책방에서도 법서는 보이지 않았다. 이미 연구실 책을 정리하는 일을 시작한 처지라 인터넷으로 서점을 검색할 의욕까지는 나지 않았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 이렇게 온 세상을 누비며 사 모은 책들과도 마침내 헤어져야할 날이 왔다. 전공과 무관한 책들은 2004년 이사하면서 이미 대폭 정리했다. 각종 문학서적, “창작과 비평”이나 “문학과 지성” 등 대학시절 용돈을 아껴가며 애써 수집한 잡지들은 그때 모두 버렸다. 그러나 본격적인 이별은 정년퇴직을 맞아 하게되었다. 2월 말까지 연구실을 비워주려면 쌓인 책들부터 정리해야만 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집사람은 책을 가지고 들어올 생각은 하지 말라는 취지의 경고를 기회만 되면 보내왔다. 결국 지난 2월은 거의 매일 출근하여 책을 버리는 일에 몰두했다. 한 권 한 권 추억이 담겨있는 책의 운명을 결정하는 작업은 길고도 고통스러웠다. 다행히 일부 책들은 후배교수들이 인수해주었는데 그 때는 마치 키우던 강아지를 길에 버리지 않고 애견가에 맡기는 것 같은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도 서가의 책 반 이상은 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상이 금홍이와 이별하는 고통에 비할 수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평생 곁에 두고 흐뭇해하던 서책과 생이별하는 괴로움도 만만치 않았다.

책을 사는 것을 옷을 사는 것에 비한다면 퇴임교수인 내가 새 책을 사는 것은 어쩌면 은퇴한 배우가 연회복을 사는 것에 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집구석에서 칩거하는 처지에 연회복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책을 쌓아둘 공간도 없고, 읽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처지를 뻔히 알면서도 새 책을 보면 눈길이 가는 증세는 여전하다. “To buy, or not to buy, that is the question.” 책상물림의 고민은 퇴직 후에도 사라질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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