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영국 대법원은 Sevilleja v Marex Financial Ltd ([2020] UKSC 31)판결에서 제3자의 행위로 인하여 회사에 손해가 발생한 경우 주주는 그로 인한 간접손해의 배상을 그 제3자에게 청구할 수 없다는 취지를 밝힌 바 있다. 이 판결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취지의 Paul Davies교수의 글과 그에 비판적인 Peter Watts교수의 글이 옥스퍼드 블로그에 게재되었다. 이 이슈는 우리 실무에서도 문제될 뿐 아니라 이론적으로도 중요한 것이므로 간단히 소개하기로 한다.
사안에서 문제된 것은 A회사의 이사 Y가 A회사의 은행계좌에서 자금을 인출하여 자신의 개인계좌로 이전함으로써 A회사 채권자 X가 채권 변제를 받을 수 없도록 한 행위였다. 즉 문제가 된 것은 회사의 주주가 아니라 채권자가 회사와 별도로 간접손해에 대해서 배상을 구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이에 대한 대법원의 결론은 회사의 채권자는 회사와 별도로 간접손해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의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은 그 논거에서 차이가 있고 차이의 중심에 있는 것이 주주의 간접손해에 대한 태도였다.
이 판결이 나오기 전에는 이처럼 손해의 중복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주주나 채권자는 손해배상을 구할 수 없다는 원칙이 존재한다는 견해가 유력했다. 이 원칙은 회사가 손해배상청구에 나서지 않는 경우에도 주주나 채권자의 제소를 막는 것이었으므로 이들에게 너무 불리했다. 이번 대법원판결은 채권자의 제소에는 이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소수의견은 이 원칙이 채권자는 물론이고 주주의 제소의 경우에도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주주의 제소를 인정하는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이중배상의 문제는 다른 법리에 의하여 처리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에 다수의견은 이 원칙은 주주의 제소에 대해서만 적용된다고 보았다. 주주의 간접손해배상청구를 배제한다는 점에서 다수의견은 우리 대법원판례와 궤를 같이 한다. 우리 판례는 회사에 대한 손해배상이 이루어지면 주주의 손해가 자동적으로 전보된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는데 이런 사고는 상장회사의 경우에는 수용하기 어렵다. 회사의 손해와 주주의 주가하락으로 인한 손해는 반드시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점은 다수의견은 물론이고 Davies교수도 인식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들은 오히려 회사의 자치(the autonomy of the company)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회사의 자산이 유출되었는데 주주가 손해를 배상받는 경우에는 회사에 있어야할 재산이 주주에게 넘어가는 범위에서는 재산에 대한 지배권이 회사에서 주주에게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Davies교수는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의 장단점을 검토한 후 “그 방식이 회사법의 개념적 일관성을 뒷받침하고 법원의 고충을 덜어준다”는 이유로 다수의견을 지지하고 있다. Peter Watts교수의 반론은 결국 주주의 손해가 존재하고 주주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 판결의 다수의견과 소수의견, 그리고 두 교수의 논의는 주주의 간접손해에 관한 우리 판례의 이론구성에 비해서는 훨씬 더 자세하다. 앞으로 이 문제에 관한 국내의 논의에도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