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쯤 “도산에 임박한 회사와 이사의 의무”라는 글을 발표한 일이 있다(상사법연구 제30권제3호(2011) 273면). 그 논문에서는 영국, 독일 등 유럽의 제도를 소개하는 한편으로 도산 시 이사가 채권자에게 신인의무를 부담하는지에 관한 델라웨어주 판례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당시에는 아직 판례가 다소 혼란스런 상태라 명쾌한 설명이 어려웠다. 오늘은 그에 관한 델라웨어법의 현재 상태를 간단히 정리한 최신 논문을 소개한다. Jared A. Ellias & Robert Stark, Delaware Corporate Law and the ‘End of History’ in Creditor Protection (2020)
미국에서는 19세기초 형평법법리를 적용하여 회사채권자를 보호하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그 법리를 “trust fund doctrine”이라고 부른다. 그에 따르면 회사가 도산하게 되면 이사들은 수탁자와 비슷하게 회사재산을 채권자 이익을 위해서 보전할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이 법리는 20세기에 접어들면서 회사의 청산에 대한 제정법규정이 마련됨에 따라 차츰 효용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델라웨어법원은 이해관계 없는 경영자의 결정은 회사가 도산상태인 경우에도 경영판단으로 보호된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2014년 Quadrant Structured Products판결에서 형평법원은 채권자들의 형평법적 구제수단에서 그 법리를 명시적으로 배제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델라웨어법원은 Credit Lyonnais판결에서 이른바 “신인의무의 전환”(duty shifting)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법리를 채택하여 도산에 임박한 회사 이사의 채권자에 대한 신인의무를 인정하였다. 나아가 “도산의 심화”(deepening insolvency)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하였으나 바로 얼마 후 태도를 바꿔 그 가능성을 부정하였다. 이들 판례에 관해서는 이미 내 논문에서 간단히 소개한 바 있다. 특히 의무전환에 관한 후속판례에서 델라웨어법원은 점점 더 엄격한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내 논문에서도 소개한 2007년 Gheewalla판결에서 대법원은 채권자가 신인의무위반을 이유로 이사를 상대로 한 소송은 대표소송으로만 제기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2014년 형평법원은 Gheewalla판결을 채권자에 대한 도산회사 이사의 신인의무를 부정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형평법원은 도산의 효과는 의무전환이 아니라 채권자도 대표소송을 제기할 적격을 갖는다는 점에 그친다고 보았다.
이제 채권자들은 도산법, 사기적양도법, 대출계약에 의해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할 수밖에 없다. 저자들은 이사는 과거 어느 시점보다도 현재 회사법상 채권자에 대한 책임을 질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저자들은 이런 상태가 반드시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라고 보고 앞으로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는 법원이 다시 채권자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