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집단 해체를 위한 규제조치

요즘은 재벌에 대한 관심이 조금 수그러든 것 같다. 오래 만에 우리 재벌에 관한 학술논문이 나와 소개하기로 한다. Assaf Hamdani, Konstantin Kosenko & Yishay Yafeh, Regulatory Measures to Dismantle Pyramidal Business Groups: Evidence the United States, Japan, Korea and Israel (2020) 공저자 모두 이스라엘 학자로 Hamdani교수는 미국에서도 활발하게 논문을 발표하고 있는 회사법학자이고 Yafeh교수는 기업집단에 관해서는 세계적인 석학으로 두 사람은 이곳저곳에서 만나본 적이 있다.

이 논문은 미국, 일본, 한국, 이스라엘에서 기업집단의 영향력을 통제하기 위하여 취한 조치와 성과를 비교,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과연 기업집단에 대한 규제가 필요한 것인지논의의 여지가 있지만 이 논문에서는 그 문제는 다루지 않고 규제를 하는 경우에 기업집단의 경제력집중을 해소하기 위해서 필요한 정치적 환경, 규제정책, 시장여건 등에 대해서 살펴본다. 미국에서는 1930년대, 일본에서는 제2차세계대전 후 미군정시기(1945-1952), 한국은 외환위기 후 1990년대 후반, 이스라엘에서는 2010년에서 2018년 사이에 각각 기업집단에 대한 개혁조치를 취한 바 있다. 한미일 3국에서 그런 조치가 행해진 것은 각각 위기를 계기로 개혁에 대한 정치적인 압력이 생겨남에 따른 결과였지만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특별히 심각한 위기로 인한 개혁은 아니었다. 개혁조치의 결과 미국과 일본에서 피라미드식 기업집단은 사라져버렸고 이스라엘에서는 그 수와 영향력이 대폭 감소하였다. 그러나 주로 기업지배구조와 관련된 개혁조치에 의존한 한국에서는 재벌은 대체로 건재하다. 이 논문은 서론(1)에 이어 기업집단에 관한 기본문헌에 대한 간단한 소개(2) 후에 미국(3), 일본(4), 한국(5), 이스라엘(6)의 개혁과정을 검토하는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져있다.

이 논문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 한 마디. 기업집단에 관한 개혁조치가 가능하려면 그것을 뒷받침하는 폭넓고 강력한 정치적 압력이 필요하다. 회사법 전공자로서는 아무래도 소수주주보호에 끌릴 수밖에 없지만 그것만으로 개혁에 필요한 동력을 확보하긴 어렵다. 경제력집중으로 인한 경쟁제한, 정치 및 행정에 대한 재벌의 과도한 영향, 심지어 재벌2세들의 일탈행동까지 총동원해야 비로소 개혁론이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처럼 수출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는 세계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덩치 큰 기업집단에 대한 지지도 만만치 않다. 그러다보니 개혁에 관한 여론의 관심은 일시적인 경우가 많고 그로 인해 이 논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제력집중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를 시행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개혁에 주어진 시간적 틈새가 제한된 경우에는 개혁이 성사되기 어렵고 성사되는 경우에도 그 내용이 비합리적으로 결정될 위험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도 현재 진행 중인 ‘공정경제 3법’의 입법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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