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발간된 지 조금 지나긴 했지만 미국의 자본시장규제에 관한 짧은 이론서(본문만 168면) 한권을 소개한다. Donald C. Langevoort, Selling Hope, Selling Risk: Corporations, Wall Street, and the Dilemmas of Investor Protection (Oxford 2016) 저자는 8.28자 포스트에서 다룬 바 있는 Langevoort교수이다. 서문에서는 이 책이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하고 있으나 오히려 수준 높은 이론서로 부르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 책은 증권규제의 구체적인 내용을 서술하는 쪽 보다는 증권규제의 형성에 작용하는 요인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증권규제는 법과 경제, 경영이 교착하는 영역으로 법경제학적 분석이 특히 활발한 분야이다. 지난 번 포스트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저자는 심리학적 관점에 조예가 깊은 학자로 이 책에서도 법과 경제학 연구 외에 심리학자들의 최신 연구를 많이 원용하고 있다. 특히 개인 및 기관투자자, 기업경영자, 변호사, 회계사, 애널리스트 등 증권시장 참여자들의 심리와 인센티브를 분석하는데 상당한 지면을 바치고 있다.
증권규제의 내용을 결정하는 동인으로는 투자자보호의 필요와 기업자금조달의 편의라는 두 가지 요소를 드는 것이 보통이다. 이 두 가지 요소는 그 시점의 정치적인 여건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증권규제의 변화를 촉진하거나 저해하는 정치적인 힘에 관한 저자의 설명은 증권규제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돕는다. 예컨대 SEC의 활동이 의회와 법원의 견제를 받고 있다는 점은 어렴풋이 들은 바 있지만 SEC를 없애려는 움직임이 늘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이 책은 서론과 결론을 포함해서 모두 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구성은 전통적인 증권규제 교과서의 모습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2장은 부실공시, 3장은 내부자거래, 4장은 공시제도의 일반적 쟁점, 5장은 기업공개, 6장은 금융위기를 각각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들 장은 6장을 제외하면 모두 기본적으로 정보공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기존 규제의 형성에 어떠한 논리와 힘이 작용하고 있는가를 사실적 차원에서 서술하는데 주력할 뿐 어떤 경우에 어느 정도로 정보의 공시를 요구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규범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의 견해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 책은 증권규제의 중요 쟁점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간결하게 정리하고 있다. 책의 도처에서 언급하는 크고 작은 실제 사례들은 모두 재미있고 유익하다. 그러나 검토대상인 문제들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명시적으로 제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독자에 따라서는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다. 저자는 복합적인 문제에 대해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어쩌면 고수익만을 내세우며 고위험 투자상품을 투자자에 추천하는 행위처럼 부적절하다고 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