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폐쇄회사와 퇴사권

예전 해외출장에서는 글로만 알고 있던 학자를 만나 이름과 얼굴을 연결시켜보는 것에서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생면부지의 젊은 학자들을 마주치는 기회가 잦아졌다. 오늘은 그렇게 만난 소장학자 한 사람의 글을 소개한다. Alan K. Koh, Shareholder Protection in Close Corporations and the Curious Case of Japan: The Enigmatic Past and Present of Withdrawal in a Leading Economy (2020) 저자인 Koh교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나와 친한 국립싱가폴대 Puchniak교수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그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할 때에도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일본의 주식매수청구권에 관한 Koh교수의 논문(Appraising Japan’s Appraisal Remedy, American Journal of Comparative Law, Vol. 62, No. 2, 2014)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그 논문은 도저히 20대 초반의 학부생이 쓴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논문이 실린 American Journal of Comparative Law는 비교법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정평 있는 저널로 전 세계학자들이 모두 내심 발표를 원하는 곳이다. 그런데 그 논문의 수준은 그곳에 실린 기성 학자들의 논문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

Koh교수와 보다 가까워진 것은 2018년 초 한 달간 싱가폴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그가 이번에는 독일에서 박사학위과정을 밟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미 일본어 실력도 탄탄한 터에 독일법까지 공부한다면 장차 대륙법과 영미법 사이를 잇는 학문적 중개인으로 대성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반가웠다. 그런데 오늘 소개할 논문을 읽고 이제 내 그런 기대가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계인 그는 슬그머니 한국어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아직 서른 정도 밖에 되지 않은 그의 미래의 학문적 궤도가 궁금할 뿐이다.

이번 논문은 그가 작성한 박사학위 논문을 토대로 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사정이 비슷하지만 일본에서는 과거 주식회사와 유한회사에는 퇴사권이 인정되지 않았으나 2005년 회사법이 제정되면서 폐지된 유한회사의 빈자리에 등장한 합동회사에서는 퇴사권이 허용되고 있다. 그는 폐쇄회사 사원(주주)의 구제수단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퇴사권이 다른 선진국에서는 널리 인정되고 있는데 반하여 일본에서는 그것이 인정되지 않았던 사정에 착안하여 일본에서 퇴사권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서 검토하고 있다.

논문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제2장에서는 폐쇄회사에서 퇴사권이 갖는 중요성을 설명하고 미국, 영국, 독일의 사정에 대해서 소개한다. 제3장에서는 일본의 과거를 논하고 있다. 퇴사권 없이도 일본 기업은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럼에도 퇴사권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로 그는 3가지를 들고 있다. ➀퇴사권의 기능을 수행한 다른 대체물이 존재하였으나 그것에는 한계가 있다. ➁퇴사권을 도입하려는 입법시도가 있었으나 실패했다. ➂일본의 기업가들이 주식회사나 유한회사 형태를 선호한 것은 유한책임, 세법상 장점 등의 이유 때문이었으므로 퇴사권이 중요하지 않아서라고 볼 수는 없다. 특히 ➀과 관련해서 주주 간에 갈등이 생기는 경우 퇴사를 원하는 주주는 경영자의 비리를 폭로한다고 위협하거나 주총결의를 다투는 소를 제기하는 편법을 동원하여 투자금회수를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는 그의 주장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주총결의를 다투는 소는 많은 경우 당사자들 사이의 진정한 분쟁과 무관하기 때문에 설사 승소하는 경우에도 원래의 분쟁은 미해결상태로 지속되는 단점이 있음은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 온 바 있다. 결국 폐쇄회사 내 분쟁의 원천적인 해결책으로 퇴사권의 가치를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제4장에서는 새로 도입된 합동회사의 개요와 퇴사권이 도입된 경위를 소개하고 제5장에서는 퇴사권의 주요논점을 해설하고 있다. 그의 폭넓은 비교법적 지식이 두각을 드러내는 곳은 퇴사권 법리의 발전방향에 관한 제6장이다. 그는 이곳에서 미국, 영국, 독일 세 나라 제도의 특징을 검토한 후 미국보다는 영국과 독일의 경험을 참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로 미국법은 복잡하여 지침을 제공하지 못하는데 비하여 영국법은 unfair prejudice법리의 운용경험이 축적되어 있어 장차 퇴사권을 회사만이 아니라 동료 사원에게도 주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또한 독일법(유한회사법)은 학설판례가 발달되어있어 일본법상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의 퇴사를 해석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독일법에 대한 참고를 촉구하는 한편으로 일본 회사법학계에서 독일법 연구에 대한 관심이 퇴조하고 있음을 아쉬운 점으로 지적하고 있는데 그 부분은 우리 학계에도 어느 정도는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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