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조직의 관점에서 본 로펌의 특징

미국에는 로펌에 관한 연구가 많다. 미국사회에서 로펌이 차지하는 비중에 걸맞게 연구는 다방면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오늘은 기업조직의 관점에서 여러 모로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시하는 논문을 한편 소개한다. John Morley, Why Law Firms Collapse, 75 Business Lawyer 1399 (2019-2020). 저자는 Yale로스쿨 교수로 뮤추얼펀드에 대한 논문이 많은 학자이다. 처음에는 로펌 붕괴의 이유라는 제목만 보고 조금 자극적인 신문기사성 글이 아닐까 짐작했다. 그런데 조금 읽다보니 본격적으로 기업조직의 문제를 분석한 글이라 나도 진지한 자세로 읽게 되었다.

저자가 주목한 것은 왜 로펌이 몰락할 때는 급속히 몰락하는가의 문제이다. 그는 1988년 이후 실제 망해서 사라진 37개 주요 로펌의 사례를 조사한 결과 로펌의 몰락이 시니어 파트너의 이탈(통상 ‘어쏘’변호사를 포함한 다수 구성원의 집단적이탈을 수반)에서 비롯된다는 패턴을 발견했다(제1장). 처음 파트너 이탈은 로펌 수익의 하락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보통이지만 특이한 것은 일단 파트너 이탈이 시작되면 그것이 다른 파트너들의 이탈로 이어져 결국 로펌의 존속이 불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은행에서의 bank-run에 빗대어 partner-run이라고 부르고 있다. 다른 조직에서도 어려움에 닥치면 구성원이 탈퇴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이 로펌에서처럼 연쇄적으로 다른 구성원의 이탈을 초래하는 경우는 드물다. 논문의 핵심은 왜 로펌에서만 partner-run현상이 일어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다(제2장). 저자는 그 이유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➀하나는 로펌의 파트너쉽 구조이고 ➁다른 하나는 해산 시까지 남은 파트너들이 로펌채권자에게 부담할 책임의 위험이다. 기업조직의 관점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물론 ➀이라고 하겠다. ➀의 요체는 다음과 같다. 파트너 이탈은 로펌이익의 감소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은데 로펌이익을 분배받는 파트너로서는 이익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다른 곳에서도 돈 벌 자신이 있는 파트너는 로펌을 떠날 인센티브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로펌에 오래 남아 있을수록 손해가 더 커지므로 능력 있는 파트너들부터 이탈하는 현상이 가속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partner-run현상을 뒷받침하는 여건으로 두 가지를 강조한다. 하나는 로펌이 탈퇴한 파트너가 자신과 경쟁하는 것을 제한하는 등의 방법으로 파트너 이탈을 제한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조윤리규범이고 다른 하나는 회계업계에 비하면 파트너와 고객과의 관계가 로펌과 고객과의 관계보다 밀접해서 파트너가 로펌을 떠나는 것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점이다.

로펌의 수익분배구조가 미국과 반드시 같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저자의 주장이 얼마나 relevance가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미국의 여건에서 설득력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오히려 개인적으로 더 관심이 갔던 부분은 같은 상황에서 파트너 이탈이 수반되지 않아 해산을 피할 수 있었던 로펌에 관한 설명(제3장)이었다. 이 부분은 로펌이 몰락을 피하기 위해서 주의할 점을 담고 있어 우리 로펌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파트너사이의 인간관계, 즉 의리와 신뢰관계가 강한 로펌의 경우에는 경제적 어려움이 있어도 순전히 경제적 이해관계로 뭉친 로펌의 경우보다 그것을 극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일부 파트너의 탈퇴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파트너들이 firm을 지키기로 합의하여 firm의 붕괴를 피한 사례도 있다. 저자는 확장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확장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수익에 비하여 비용증가를 초래하여 이익감소의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파트너들 사이의 인간관계나 로펌의 지배구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다고 한다.

저자는 partner-run현상에 대한 몇 가지 자신의 견해를 표명하고(제4장), 이어서 그 현상을 막기 위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제5장). 저자는 심각하지 않은 경제난에도 로펌이 붕괴할 수 있는 이유로 로펌이 결국 파트너에 의해 소유되고 있는 점을 들고 있다. 그에 의하면 투자자에 의한 소유가 허용되는 경우에는 로펌이 어려움에 닥쳤을 때 기업회생의 경우와 마찬가지의 수법을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지분소유자의 탈퇴금지(capital lock-in)가 지닌 중요성을 지적하며 일부 지분소유자의 탈퇴가 연쇄적인 탈퇴를 초래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이 문제는 선행 탈퇴자가 더 많은 배분을 받는 경우에 늘 일어날 수 있는 문제로 뮤추얼펀드에서 당일환매제도를 채택하는 경우에 발생하는 문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 어쩌면 저자가 당초 이 문제에 착안하게 된 것도 그가 원래 뮤추얼펀드 전문가라는 사실과 다소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증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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