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법과 강제적 중재

분쟁해결수단으로서 중재의 비중과 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날로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중재가 주로 국제거래와 관련한 기업간 분쟁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는데 비하여 미국에서는 소비자거래나 증권거래와 관련해서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다수의 당사자가 관련된 거래에서는 중재합의를 인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음에도 미국의 법원은 그에 대해서 상당히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미국의 법원이 소비자거래에서도 중재에 우호적인 것은 중재가 말썽 많은 집단소송을 대체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집단소송에 비해 중재는 기업 쪽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약관에 중재합의조항을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다. 증권거래와 관련된 분쟁에서도 중재로 집단소송을 막을 수 있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회사법분쟁에서도 중재로 주주소송을 막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이에 관한 최신 논문을 한편 소개한다. Asaf Raz, Mandatory Arbitration and the Boundaries of Corporate Law (2020). 저자는 현재 펜실베니아 로스쿨 박사과정에 있는 이스라엘 출신의 젊은 변호사이다.

이 논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있다. I장은 중재합의의 효력을 폭넓게 인정하는 최근 판례의 추세가 지속되는 경우 회사법분쟁에 대한 중재합의조항을 정관이나 부속정관에 포함시킴으로써 회사법분쟁을 소송이 아닌 중재로 해결하게 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II장에서는 중재가 가능하려면 중재합의조항이 포함되는 정관이나 부속정관을 “계약”으로 볼 필요가 있는데 그것을 계약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을 주장한다.

논문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주로 다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➀회사법상의 신인의무는 폭넓은 권한을 가진 형평법법원에 의해서 비로소 제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약 소송이 중재로 대체되는 경우에는 주주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우려가 있다.

➁미국 회사법학계의 주류적 견해라고 할 수 있는 계약설에도 불구하고 정관이나 부속정관은 계약으로 볼 수 없고 따라서 회사법분쟁의 강제적 중재는 허용될 수 없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서 회사법이 계약법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법분야라는 점을 주장하며 두 법의 차이에 대해서 상세한 설명을 제시한다.

이 논문은 강제적 중재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이 가능하려면 정관이나 부속정관을 계약으로 보는 것이 전제되기 때문에 논문의 핵심은 결국 계약설이 타당한지 여부이다. 현실적으로 회사법분쟁에 관해서 강제적 중재가 허용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이 논문의 가치는 계약설에 대한 비판에서 찾아야할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회사법과 계약법을 대비하여 차이점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다양하고 방대한 문헌을 인용하고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논지가 명쾌하게 정리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저자는 계약설이 미국적 법현실주의 전통의 산물로 회사를 계약으로 부르는 것은 일종의 “metaphor”로서 그것을 법적 개념과 동일시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또한 미국의 회사법학이 경제학, 정치학 등 비법학적 관점에 치우친 나머지 오히려 법적 분석을 경시하는 점을 비판하는데 이는 그가 기본적인 법학교육을 이스라엘에서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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