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투쟁으로서의 증권규제

지난 1월 게임스톱이란 게임판매업체 주식을 대상으로 한 공매도 공방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에서도 다룬 바 있다(2021.1.30.자 포스트). 오늘은 게임스톱 사태를 계기로 증권규제 전반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고찰한 논문을 소개한다. Jonathan R. Macey, Securities Regulation as Class Warfare(2021). 저자는 이미 여러 차례 소개한 바 있는 저명한 예일대 Macey교수이고 “계급투쟁”이라는 자극적인 제목까지 달고 있으니 그냥 스쳐 보내기 아까워 선택했지만 아직 충분히 마무리되지는 못한 느낌이 있는 글이다. 그러나 SEC의 활동에 대한 거의 전면적인 비판이란 점에서 그 타당성을 떠나 신선할 뿐 아니라 미국 증권시장의 동향에 관한 최신 정보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유익하다고 판단된다.

저자는 SEC가 자본시장의 공정, 질서, 효율(fair, orderly, and efficient)을 위해서 봉사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일반투자자가 아닌 엘리트(투자은행, 헤지펀드, 월가 로펌 등)의 이익에 봉사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법률문헌에서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계급투쟁이란 용어는 그런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논문은 서론, 본론, 결론의 간단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본론에 해당하는 II장에서는 SEC가 공정, 질서, 효율을 어떻게 저해하고 있는지를 각 부분으로 나누어 다루고 있다.

논문에서 가장 이해하기 쉽고 설득력이 있는 부분은 공정에 관한 II장 A절이다. A절은 시세조종과 게임스톱주식의 거래장소인 로빈후드의 사업모델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법률적인 관점에서 흥미로운 것은 개미투자자들의 시세조종과 공매도 후 대상주식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를 공시하는 헤지펀드(=엘리트)의 행태를 비교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양자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데 SEC가 후자의 행태는 묵인하고 전자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비판한다. 로빈후드의 사업모델은 고객의 주문을 다른 거래소에 넘기는 대가로 받는 수수료 수입에 의존하는 것인데 그에 따르는 이익충돌적 요소를 문제로 지적한다.

II장 B절에서는 자본시장에서의 질서를 거래정지(trading halts)와 복잡한 거래주문이란 두 가지 측면에서 검토한다. 저자는 어차피 시장은 무질서하기 마련인데 SEC가 질서를 추구한다는 핑계로 자본시장 엘리트들의 이익에 봉사한다고 주장한다.

II장 C절은 효율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다소 혼란스러울 뿐 아니라 논문의 다른 부분과도 조화되지 않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저자는 앞부분에서 효율적시장가설에 대해서 설명한 후 SEC가 효율을 증진하기 보다는 사적인 조직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비판한다. 그 예로 저자는 SEC가 증권애널리스트의 활동을 방해한다고 지적하며 그 대표적인 예로 내부자거래에 관한 Dirks판결의 사안에서 SEC가 애널리스트를 제재하려한 것과 공정공시규칙(Regulation FD)를 들고 있다. 저자는 공정공시규칙이 특히 소규모기업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주장하며 그를 뒷받침하는 실증연구를 인용하고 있다.

저자는 공정성은 효율성을 확보함으로써 자연히 달성할 수 있는데 효율적인 시장에서는 규제가 불필요하기 때문에 효율은 규제기관에게는 위협이 된다는 말로 논문을 마치고 있다. 저자는 규제기관인 SEC가 “의도적으로” 효율을 해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지만 “위협”이란 표현은 다분히 그런 뉘앙스를 담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규제를 부정적으로 본다는 점에서는 저자의 시카고학파적 경향이 드러나지만 다른 한편으로 “계급투쟁”적 측면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진보적 경향이 보인다는 점이 특이한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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