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지배구조의 변화: 일본, 한국, 중국의 경험을 소재로 하여

8년 전 오랜 친분이 있는 동경대 岩原, 山下, 神田 세 교수의 화갑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한 논문집에 참여한 적이 있다. 金建植, 企業支配構造の変化―日本・韓国・中国の経験を素材にして, 會社・金融・法(上)(商事法務 2013) 135-185면(翻訳:田中佑季). 세 교수들로부터는 여러 모로 신세진 바가 많았으므로 나로서는 나름 애써 논문을 작성했다. 기업지배구조의 연구대상을 오래동안 관심을 가져왔던 일본 뿐 아니라 당시 막 공부를 시작했던 중국까지 넓혀서 한, 중, 일 세 나라의 사정을 비교하며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한창 그 논문을 준비하던 중 마침 회사법대계출간을 주도하던 성균관대 최준선 교수의 요청으로 우리나라 부분은 따로 분리해서 그곳에 먼저 발표하게 되었다. 회사법대계(I)(1판 2013) 261-307면. 일본에서 논문이 나온 후인 2016년 중국 부분은 민영화과정을 발전시켜 한중법학회 학술지인 중국법연구에 발표하였다. 중국 국유기업의 민영화 – 중국 기업지배구조의 서론적 고찰, 중국법연구 제28집(2016.5) 129-167면. 한중법학회 관계자들이 환갑을 넘은 사람의 때늦은 중국법 관심을 가상히 여겼는지 이 논문을 그 해의 우수논문으로 선정하는 바람에 몹시 쑥스러웠다.

그런데 정작 일본에 대한 부분은 국내에 소개할 기회가 없었다. 물론 일본에서 나온 논문집은 나름 유명한 것이라 국내에서도 구하려면 구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국내독자들이 읽기는 불편한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하여 마침 잠시 빈 시간이 생긴 틈을 이용해서 직접 내 손으로 번역을 하게 되었다. 사실 논문자체가 원래 국문으로 작성된 것이니 번역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소 어폐가 있다. 그러나 초고가 번역자인 타나카씨와 오가는 과정에서 상당한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일일이 대조하며 수정하는 작업을 거쳐야했다. 타나카씨의 세심한 일솜씨에는 새삼 감탄하게 되었지만 동시에 일본말과 우리말의 미묘한 차이에 대해서도 다시금 깨닫고 끝없는 공부의 필요를 절감했다.

논문이 나온 후 세 나라의 기업지배구조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일본에서는 기업지배구조코드와 스튜어드십코드가 채택되었을 뿐 아니라 드디어 사외이사 선임을 의무화하는 회사법개정안이 통과되었다. 그밖에 관민합동연구회의 각종 보고서에 관해서는 이 블로그 2020.8.14.자 포스트 참조. 이와는 전혀 다른 맥락의 일이지만 닛산르노의 카를로스 곤을 둘러싼 스캔들은 일본의 거시적인 기업지배구조를 다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중국에서는 법제의 변화는 별로 눈에 띄지 않지만 대기업에 대한 공산당의 영향력은 한층 강화되었다. 알리바바의 마윈 사태를 바라보며 일부 학자들이 지적하였던 것처럼 국유기업과 민간기업이 사실상 별로 차이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감이 들기도 한다.

우리나라 쪽으로 눈을 돌려보면 논문에서는 그간 재벌총수들이 줄줄이 형사처벌을 받은 바 있으니 이제 터널링을 비롯한 노골적인 이익충돌행위는 출현하기 어려운 것 아닐까라는 희망 섞인 예견을 도처에서 표시한 바 있다. 그런데 민망하게도 이런 예견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 바로 삼성물산합병을 둘러싼 소동이다. 그 밖의 변화로는 이제 엘리엇 같은 외국인 투자자 뿐 아니라 KCGI 같은 국내펀드의 주주행동주의도 무시할 수 없다. 제도개선과 관련해서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이른바 기업관련3법의 개정을 둘러싸고 법석이 일었지만 구체적인 개정사항들이 과연 우리 기업지배구조의 변화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 있다. 기업지배구조의 현실과 관련해서는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둘러싼 공방이나 그와는 조금 결을 달리하지만 금호석유화학에서의 지배주주일가 사이의 내분 등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가 우리 기업지배구조의 앞날에 시사하는 바가 클 것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세 나라에서 모두 기업지배구조와 관련한 변화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논문에서 제시한 일본의 사원출신 전문경영자, 한국의 지배소수주주의 세습적 지배, 중국의 공산당과 관료경영자라는 각국의 기업통제주체의 특징에는 별 변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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