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이 블로그에서 누차 언급한 바와 같이 ESG는 이제 대기업의 경영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고려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이와 관련한 소송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는데 법원의 판단은 나라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오늘은 그러한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에 관한 블로그 포스트 하나를 소개한다. Paul Davies, Shell: A Tale of Two Courts, Oxford Business Law Blog (10/6/2023)
저자인 Davies교수는 이미 몇 차례 소개한 바 있는 영국회사법의 대가이다(예컨대 2020.3.24.자). 그의 글은 Shell Petroleum이란 동일한 회사의 ESG정책에 대해서 환경운동단체가 제기한 소송에서 네델란드와 영국의 법원이 내놓은 상반된 결정을 다룬다. 2021년 네델란드 헤이그 지방법원의 Vereniging Milieudefensie v Royal Dutch Shell plc판결은 흔히 소극적이라고 여겨지는 대륙법법원이 법형성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Milieudefensie판결에서 법원은 Shell로 하여금 2030년까지 대기중 CO2방출을 2019년 대비 45% 감축할 것을 명하였다. 이러한 감축은 결국 감산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법원은 감축이 회사의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감축으로 인한 이익이 회사의 이익을 압도한다고 판시하였다. 법원이 근거로 든 것은 일반적으로 수용된 불문법(unwritten law)을 위반한 행위로 인한 불법행위를 인정하는 민법규정이었다. 법원이 불문법으로 판단한 것은 Shell로서는 준수할 의무가 없는 국제기준과 소프트로였다. (이점에서는 일본의 동경전력판결(2023.11.11.자 포스트 참조)과 공통점이 있다) Shell측에서는 자신이 감산하면 결국 경쟁회사들이 증산할 것이기 때문에 실제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등의 반론을 제시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네델란드법원과는 달리 영국 고등법원 형펑법부는 2023년 Client Earth v Shell plc판결에서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이 판결은 이사회가 채택한 기후변화정책이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이사의 의무위반으로 인한 책임을 묻기 위하여 환경운동단체가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에 관한 것이다. 영국법상으로 주주대표소송은 법원의 승인을 얻은 후에만 진행할 수 있는데 승인을 얻기 위해서는 이사의 의무위반에 대한 소명이 필요하다. 원고는 회사법상 이사의 충실의무(172조)와 주의의무(174조)의 위반을 주장하였으나 법원은 소명이 불충분하다고 보아 승인을 거부하였다. 특히 주목할 것은 충실의무인데 회사법 172조상 “회사 이사는 주주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회사의 성공을 촉진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성실하게 판단하는 방식으로 행동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 . . (d)회사활동이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한다.” 법원에 따르면 이 규정은 이사회의 주관적 판단을 전제한 것으로 원칙적으로 법원이 간섭할 여지는 없다고 본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과거의 판결에서 Lord Wilberforce가 제시한 다음과 같은 판시를 인용한다: “경영판단의 당부에 대해서 법원에 제소할 수는 없다. 법원은 경영자의 권한범위 내에서 정직하게 도달한 결정에 대해서 일종의 감독이사회(supervisory board)의 역할을 수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울러 법원은 당해 환경운동단체가 이 소송을 선의에 따라(in good faith) 제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책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제기된 것이라는 이유로 승인을 거부하였다. 나아가 승인절차에는 출석이 요구되지 않으므로 출석비용은 각 당사자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법원은 원고에게 Shell측의 출석비용을 지급할 것을 명하였다.
통상 법형성에 적극적이라고 인식되는 영미법국가의 법원이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고 반대로 대륙법국가의 법원이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저자의 지적은 흥미롭다. 한편으로는 두 나라 법원의 대조적인 태도는 어쩌면 두 나라 법관들이 기업활동을 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비롯된 측면도 없지 않을까 여겨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