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온 나라를 휘몰아친 엄청난 정치적 사건의 돌풍 속에 잠시 관심권을 벗어나긴 했지만 아직도 여전히 진행 중인 동업자간의 분쟁으로 고려아연사건이 있다. 이 분쟁은 앞으로 오래동안 회사법과 자본시장법 분야에서 중요한 케이스로 평가될 것으로 여겨진다. 오랜 기간 유지된 성공적인 동업관계가 최악의 충돌로 귀결된 것은 그 자체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전에 동업관계의 원만한 해소방안에 대해서 아무런 대비가 없었다는 것은 법률가의 관점에서 유감스런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마침 독일 저널 최신호에 동업관계의 해소방안의 하나인 러시안 룰렛 조항(Russian Roulette Clause)에 관한 논문이 발표되었기에 서둘러 소개한다. Holger Fleischer & Peter Agstner, Russian-Roulette-Klauseln vor deutschen und italienischen Gerichten, ZGR 2024, 933–958. Fleischer교수는 이미 여러 차례 소개한 독일 회사법의 권위자이고 공저자는 이태리 법대의 교수이다.
러시안 룰렛 조항이란 교착상태가 발생한 경우 일방 주주가 상대방 주주에게 특정한 가격에 자신의 보유주식을 매수하거나 상대방의 보유주식을 매도할 것을 선택하도록 하는 조항이다. (이에 관한 간단한 소개로는 이동건 외, 주주간계약, 천경훈 편, 우호적 M&A의 이론과 실무(2) 356-357면) 이 조항은 영미의 계약실무에서 유래하는 것으로서 그간 유럽대륙에서의 효력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없지 않았다. 이 논문은 2023년 이태리 대법원이 그 효력을 전반적으로 긍정하는 판결을 선고한 것을 계기로 작성되었다.
서론과 결론을 제외한 논문은 크게 3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먼저 II장에서는 그 조항의 의의, 구조, 채택방법(정관이나 주주간계약에서의 수용), 법적, 경제적 평가, 실제 사용현황 등을 살펴본다. 저자들은 그 조항의 장점으로 가격의 공정성, 교착상태의 간편하고 확실한 해소, 당사자들의 원만한 협의를 유도하는 효과 등을 든다. 반면에 단점으로는 결과가 예측불가능하다는 점, 일방당사자만이 사업능력을 보유한 경우에는 불합리한 결과에 이를 수 있다는 점, 재정적으로 우월한 당사자가 상대방에게 불리한 조건을 강요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든다.
III장에서는 독일법상의 평가, 그리고 IV장에서는 이태리법상의 평가를 제시한다. III장은 먼저 이 조항의 유효성을 주로 민법적인 관점에서 몇 가지 논점에서 검토한다. 이어서 (방론으로) 그 조항이 그 자체로서 무효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힌 2013년 뉘른베르그 고등법원 판결을 소개한다. 끝으로 그 조항이 민법 242조(신의성실원칙)상으로 문제될 수 있는 상황에 관한 최근의 논의를 언급한다. IV장은 이태리 대법원 판결과 2024년의 밀라노 지방법원 판결에 대한 소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기할 것은 대법원 판결이 비교법의 소개에 상당한 지면을 바치고 있다는 점인데 저자들은 결론인 V장에서 법원이 외국법을 원용하는 것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