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대법원이 하이마트 LBO사건에서 원심판결을 뒤엎고 하이마트 대표이사의 배임죄를 인정한 판결(대법원 2020.10.15. 2016도10654 판결)을 선고한 이후 실무계에서는 이 판결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그리고 그 판결의 테두리 내에서 앞으로 LBO거래는 어떻게 진행해야할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상태이다. 마침 방금 나온 BFL에 이 판결에 대한 서울대 송옥렬 교수의 평석이 실렸기에 소개한다. 송옥렬, 하이마트 LBO 판결, BFL 105호(2021.1) 77-95면.(따로 논문을 첨부하지 못하니 BFL의 구독자가 아닌 독자들은 이번 기회에 구독을 해주시기를 부탁드리는 바이다.) 송교수는 이 판결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판적이다. 나도 개인적으로 송교수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기에 구태여 그 내용을 여기서 요약하지는 않겠다. 다만 송교수의 날카로운 평석에 용기를 얻어 판결을 읽고 느꼈던 몇 가지 소감을 밝히고자 한다.
➀먼저 드는 생각은 대법원이 LBO거래자체에 대해서 너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LBO는 대상회사의 현금흐름을 이용해서 조달한 자금으로 대상회사 지배주식을 취득하는 거래이다. 기업인수거래자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실현하는 긍정적 측면을 지닌 거래이다. 기업인수가 긍정적인 거래라면 그것을 자기 돈을 들이지 않고 남의 돈으로 한다고 해서 나쁘다고 볼 이유는 없다. 오히려 차입으로 인수자금을 조달함으로써 기업인수의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면에서는 더 긍정적으로 볼 여지도 있다. 대법원이 특히 부정적으로 보는 담보형 LBO의 경우 인수자가 인수자금을 차입할 때 채무자도 아닌 대상회사의 자산이 담보로 제공된다는 점이 문제이다. 이 점에 대해서 대법원은 인수자가 대상회사의 담보제공으로 인한 위험부담에 상응하는 대가를 회사에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회사의 손해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거래에서 과연 회사는 손해만 있고 이익은 없는 것일까?
➁회사의 손해에 관한 판단에서 대법원은 회사가 담보제공으로 인한 위험을 부담하는 것에 대한 반대급부를 받은 것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대법원의 이 판단은 너무 형식논리에 치우친 것 같다는 느낌이다. 대법원은 재산상 손해의 유무를 판단할 때 “본인의 전 재산 상태와의 관계에서 법률적 판단에 의하지 아니하고 경제적 관점에서 파악하여야 한다”고 명언하고 있다. 과연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LBO는 회사에 아무런 이익을 주지 않는 것일까? LBO거래는 송교수가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대상회사가 차입자금으로 자기주식을 매입한 것과 경제적으로 효과가 같다. 결과적으로 대상회사의 자산에는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부채비율이 높아지는 쪽으로 재무구조가 변화하는 것인데 그 자체도 항상 부정적으로 보아야하는가의 문제는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내가 부채비율의 증가에 못지않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LBO로 인해서 지배주주의 교체가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LBO가 허용되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하여 유능한 인수자가 기업을 인수할 가능성이 더 높고 기존주주가 보유주식을 보다 높은 가격에 매도할 가능성이 더 높다. 또한 인수자는 대상회사 자산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갖고 지배주식을 인수하는 것이고 금융기관은 인수자의 그런 능력을 신뢰하여 자금을 제공할 것이다. 따라서 – 비록 늘 그런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 LBO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가져올 가능성을 높여준다고 볼 수 있다. LBO에 의한 지배주주의 교체를 통해서 회사가 기업가치를 향상시킬 기회를 갖는다면 그것이 담보제공의 대가로 얻는 회사의 이익이라고 볼 수는 없을까? 만약 이런 논리가 억지스럽게 여겨진다면 보다 높은 가격에 보유주식을 매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누리는 주주의 이익을 회사의 이익으로 볼 수는 없을까?
➂이런 해석이 가능하려면 대법원이 1983년 전원합의체판결(대법원 1983.12.13. 82도2330 전원합의체 판결)이래 고수하고 있는 법인격 중시론을 포기해야할 것이다. LBO와 관련한 법인격 중시론의 문제점은 송교수의 평석이 나오기 전에도 이미 수많은 논문에서 지적한 바 있다. 그 중 가장 상세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논문은 경북대 이상훈 교수가 2008년 발표한 논문(이상훈, LBO와 배임죄(상), (하) 법조 619호(2008.4) 106면; 620호(2008.5) 184면)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법원판결은 “주식회사와 주주는 별개의 법인격을 가진 존재로서 동일인이라 할 수 없으므로 1인 주주나 대주주라 하여도 그 본인인 주식회사에 손해를 주는 임무위배행위가 있는 경우에는 배임죄가 성립”한다는 1983년이래의 법인이익독립론(이상훈 교수의 표현)을 꿋꿋하게 되풀이하고 있다. 나도 다른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LBO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주주와 채권자의 이익을 어느 범위까지 보호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른 이해관계자로서 근로자 이익도 중요하겠지만 그것은 법기술적 관점에서 회사법이 아닌 다른 법에 의해서 보호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대법원 판결과 같이 주주와 채권자의 이익이 어떠한 영향을 받는지를 따져봄이 없이 그냥 회사이익이란 막연한 개념을 가지고 LBO의 허용범위를 정하는 것은 수술 칼 대신 부엌칼을 가지고 수술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
➃이번 대법원판결은 가뜩이나 불확실성의 그늘 밑에서 진행되던 우리나라의 LBO거래에 찬물을 제대로 끼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LBO가 그토록 사악한 거래라면 찬물이 아니라 독극물을 퍼붓는다 해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LBO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이상한 거래가 아니라 선진자본주의국가에서는 널리 행해지는 일반적인 거래이다. 다만 어느 나라에서고 LBO거래는 특히 채권자이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일정한 제약조건 하에 진행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비교적 자본충실원칙을 아직도 고수하고 있는 독일에서도 우리처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형사처벌을 가하지는 않고 있다. 우리만 특별히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할 이유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 대법원도 이제는 선진국에서 통용되는 일종의 global standard를 참고하는 노력을 기울일 단계에 이른 것은 아닐까?